[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정읍 칠보에는 기자 숭배의 한 형태인 남근석과 당산이 남아 있어 중요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기자석은 300년 전에 빈민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하였던 박잉걸이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는 원래 12당산(24개의 당산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기 정도 밖에 없으며, 오늘날에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집집마다 제비를 걷어 이곳에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들 낳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밤에 백설기와 과일 등을 이 바위에 차려 놓고 기도를 올렸으며 마을의 당산과 기자의 신앙물로서 이 바위에 해를 끼치면 눈이 먼다는 속신이 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1095번지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섬그리고뜰에서 가꾸는 2백평 남짓의 밭에는 라이그라스가 심어져 있는데 이 풀은 일년생과 다년생 종 모두 있는데 이들은 집단을 이뤄 자라고, 잎이 길어서 우거질 때는 보리밭처럼 녹색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잎이 자랄수록, 밝고 선명한 녹색에서 더 짙은 녹색까지 띠게 되는데 잎에는 털이 없고 납작하고, 잎의 길이를 늘려주는 융기부가 고르게 간격을 두고 자란다.
라이그라스는 야생 잡초이지만 소 먹이로는 쌀 밥에 해당하는 고급 식물이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은 라이그라스의 움직임이 흡사 파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은 1453년 과거에 합격한 후 사간원정언 이후 정읍 칠보로 내려와 후진 양성 및 학문에 정진하면서 1475년 향음주례를 마련하고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다.
국내 최초의 가사 문학 작품인 상춘곡의 저자이며, 사후 무성서원에 배향되어 사후 재례를 후손들이 지내고 있으며 정극인 묘역은 무성리 은석마을 산 중턱에 위치하며, 묘 위쪽으로 부인묘가 자리하고 있다.
묘역은 봉분, 석물, 재실 등을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사대부 계층의 완결형 시설 및 공간구조를 보여 주고 있으며, 묘역에 설치된 석물은 묘표 3기, 망주석 1쌍,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 장명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 34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조선 시대 태인현에 있던 관아 건물 중 하나이며 보물인 피향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헌은 현감의 사택인 내동헌과 공무를 집행하던 외동헌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보통 동헌이라 하면 외동헌을 말한다.
현재의 태인 동헌은 중종(재위 1506∼1544) 때 건립되었고, 순조 16년(1816)에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앞면 6칸, 옆면 4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 지붕집이고 내부의 공간이 매우 다양한데, 오른쪽이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뒤쪽 퇴칸은 오른쪽 2칸을 대청보다 높은 마루로 꾸미고 나머지는 흙바닥으로 처리하였는데 이것은 동헌의 다양한 기능을 한 건물 안에 모두 넣은 것으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주소 : 전북 정읍시 태인면 동헌길 24 (태성리)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가을이면 하얗게 피어 나는 메밀꽃을 심어 들녘을 소금밭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뜨리는 정읍 고부의 메밀밭 축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꽃축제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봄에는 유채꽃이 피어나 힐링을 주고 있다.
흔히들 유채는 제주의 랜드마크이지만 이제는 전국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 되었기에 도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란색의 물결이다.
고부면은 고부천의 일원과 시작하는 언덕에서 면민들의 경관 사업의 일환으로 수고한 노력 덕분에 봄을 보내면서 많은 여행객에게 힐링을 주고 있다. 고창이나 부안으로 지나는 길에 활짝 핀 유채꽃으로 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장소가 되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11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1882년 이후의 각종 사회 혼란과 정부의 부패로 민심이 동요하던 가운데 고부군 군수 조병갑의 횡포가 도화선이 되어 농민 혁명을 일으키면서 시작한다.
동학 혁명은 농민이 주축이 되는 운동으로 지배 계층에 대한 조선 시대의 최대의 항쟁이며,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결국 실패했으나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동학 혁명의 전 과정을 고부면 면사무소 인근 망을 벽에 벽화로 그려 동학 혁명의 내용을 알리고 있으며 작은 마을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눈으로 역사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교동3길 5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보면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 고이 들어 앉는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신록은 화려했던 꽃들이 지고 난 후 연녹색의 신록이 올라오면서 산천초목을 모두 녹색으로 바꾸어 버리기에 먼 산을 바라보면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편안함을 준다.
특히 정읍 전역은 시내를 제외하고는 가는 곳, 보는 곳마다 모두 신록의 연속이고 푸르름이 이어지는 시기가 되고 있다. 축사가 많은 정읍 들녘은 온통 소 먹이 풀인 나이그라스가 자라나면서 녹색을 더해 주고 있는 시기가 되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정우면 정우남로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정읍 만석보가 유명한 것은 동학 혁명의 발단이 된 곳이기에 유명해졌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을 동원해 만석보를 쌓고 받지 않기로 했던 수세를 징수하자, 이태 뒤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때려 부수어 버린데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읍 신태인 만석보에서 파크 골프장까지 굽은 형태로 노란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는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내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유채 꽃 밭은 생태 관광 자원을 활용한 경관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했지만 마땅한 포토 라인이나 철교 밑을 너무 허술하게 조경한 탓에 지금은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신경 쓴다면 철교를 지나가는 기차는 노란 유채 꽃과 어우러져 가는 봄을 즐기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게 될 것이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 1200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정읍 만석보가 유명한 것은 동학 혁명의 발단이 된 곳이기에 유명해졌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을 동원해 만석보를 쌓고 받지 않기로 했던 수세를 징수하자, 이태 뒤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때려 부수어 버린데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읍 신태인 만석보에서 파크 골프장까지 굽은 형태로 노란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는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내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유채 꽃 밭은 생태 관광 자원을 활용한 경관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했지만 마땅한 포토 라인이나 철교 밑을 너무 허술하게 조경한 탓에 지금은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신경 쓴다면 철교를 지나가는 기차는 노란 유채 꽃과 어우러져 가는 봄을 즐기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게 될 것이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 1200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정읍천은 내장산의 각종 위락시설, 음식점이 쏟아내는 오·폐수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하였으나 90년대 중반부터 수질을 검사하고 주민감시를 일상화하면서 깨끗한 1급수가 흐르는 강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현재 하천변은 깨끗한 환경과 맑은 수질로 인해 도심 속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봄이면 철쭉, 개나리, 벚꽃 등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상춘객이 찾아든다.
2025년 벚꽃 축제를 거닐다가 시기동에서 내장산동에 거쳐 피어난 벚꽃을 보며 이학수 시장 이하 지역의 시의원의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외관으로 나타나면서 과정들이 꽃과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공평동 일대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정읍천은 내장산의 각종 위락시설, 음식점이 쏟아내는 오·폐수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하였으나 90년대 중반부터 수질을 검사하고 주민감시를 일상화하면서 깨끗한 1급수가 흐르는 강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현재 하천변은 깨끗한 환경과 맑은 수질로 인해 도심 속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봄이면 철쭉, 개나리, 벚꽃 등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상춘객이 찾아든다.
2025년 벚꽃 축제를 거닐다가 시기동에서 내장산동에 거쳐 피어난 벚꽃을 보며 이학수 시장 이하 지역의 시의원의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외관으로 나타나면서 과정들이 꽃과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주소 : 전북 정읍시 공평동 일대
[정읍에 마음을 뺏기다]
보화리 야산 중턱에 나란히 서 있는 2구의 석불 입상은 백제 시대의 불상으로 백제 최남단에 조성된 화강암 석불이라는 점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의 착의법을 보여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두 불상은 같은 조각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른쪽 불상이 왼쪽 불상보다 약간 커서 이불병존상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것은 아닌 듯 하다.
오른쪽의 큰 불상은 뒤편의 광배(光背)가 깨지고 대좌의 아랫 부분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대체로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민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인 육계가 솟아 있는데, 이는 백제의 불상인 부여 군수리 석조 여래좌상과 흡사하고, 삼국 시대 말기부터 말기부터 등장하는 편단우견의 착의법의 입상이다.
주소 : 전북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116